껍질

등껍질 속으로 머리를 밀어넣었다. 삶은 안으로 파고들 뿐이었다. 등껍질은 밖으로 향했고, 머리는 배속으로 향했다. 그래서 내는 목소리가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내부로 쌓인 의미들은 배속에 저장될 뿐이었다. 지독한 변비에 걸렸다. 배에 힘을 주고 악, 하고 뱉었지만 껍질 속을 울릴뿐이었다. 뱃고동. 밖에서는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길이 없었다.

껍질은 불완전한 안전을 담보로 한, 노예상태다.

붉은 껍질은 아름다웠다. 밖에서 그것을 아름답다고 했기 때문에 아름답다 여겼다. 누구나 부러워했기 때문에 그것을 사랑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해가 뜨는 시간에 수면으로 올라가 등을 높이 쳐들었다. 일출이 붉은 껍질을 더욱 붉게 만들었다.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계속 헤엄을 치면서 수평을 유지해야 했다. 수면 위에서의 등껍질은 금방 물기가 사라져 타들어갔다. 대신 점점 더 붉게 물들어갔다.

아름다워요!

저기 아래 수심깊은 곳에서 어린 것들이 위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래에서는 하얀 배딱지밖에 보이지 않는데. 허우적대는 팔다리는 방향성없이 빙빙 돌았고, 단지 수평을 유지하는데 더욱 힘을 썼다. 앞으로 가지도 뒤로 가지도 않기위해, 거기, 녀석들 바로 위에. 붉은 등껍질을 바라보는 아랫것들.

고통을 수반한 고독은 아름다움을 주었다. 아름다움은 선망과 사랑을 주었다.

오전 시간을 수면에서 보내느라 아침 식사를 매번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밤새 자란 질 좋은 수초를 다른이들이 다 먹어버리고 나서야 뒤늦게 찌꺼기를 먹어야 했다. 찌꺼기는 쓰고 질기고, 영양분까지 없었다. 게다가 남들이 보지 않도록 허겁지겁 몰래 먹어야 했다. 혹시라도 지나가는 다른이가 볼때는 수초를 씹는 행위를 멈추고 머리를 배속으로 들이밀었다. 붉은 등은 다른이의 눈길을 현혹했기 때문에 비교적 숨을 수 있었다. 목을 껍질속으로 집어넣은 상태로 음식을 씹고 삼키는 행위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겨우 삼키더라도 내장과 위가 눌려 소화가 되질 않았다. 변비와 영양실조는 심해져갔다. 하지만 다른이가 아름다운 붉은 등이 찌꺼기를 먹는 것을 본다면, 분명 실망하고 말 것이다.

‘사랑받고 싶어.’

날이 갈수록 말라가는 바람에 몸을 덮고 있는 껍질까지 헐겁게 느껴졌다. 껍질이 무거웠다. 연약해진 팔다리는 힘이 없어 헤엄을 잘 치지 못했다. 그래서 자주 해수면을 둥둥 떠다녔다. 이리저리 파도에 몸을 맡기다보면 너무 멀리 가버릴 때도 있었다. 그러면 밤새 헤엄을 쳐서 다른이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다시 아침이 오면 식사를 거르고 일출을 향해 수면으로 올라갔다.

더이상 항문이 조여지지 않았다. 항문으로 하던 산소교환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항문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맹낭에는 그나마 저장해둔 먹이가 있었지만, 항문이 풀리자 채 소화도 덜 된 먹이들이 쏟아져내렸다. 냄새나고 추한 배설물들이었다. 그것을 내보내지 않기 위해 항문에 힘을 주었지만, 힘을 줄수록 반쯤만 소화된 먹이들이 소화액과 함께 뿜어져나왔다. 그리고 그 장면은 껍질 속에서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밖으로 분출하는 배설물을 본 다른이들이 붉은 껍질은 추하다고, 말했다.

붉은 껍질은 추했다. 밖에서 그것을 추하다고 했기 때문에 추하게 여겼다. 더이상 새벽부터 수면으로 올라가지 않게 된 붉은 껍질은 그 색이 옅어졌다. 대신 다른이들의 틈에 섞여 질좋은 아침 수초를 먹을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그 존재를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에 양껏 먹을 수 있었다. 등껍질 안으로 들어가서 씹어먹을 필요가 없어지자, 목을 밖으로 쭉 뻗고 등을 피고 먹었다. 자연스럽게 소화가 잘되었다. 팔다리에 힘이 붙고, 시력이 좋아졌다. 드디어 밖으로 뻗은 머리가 밖으로 소리를 낸다. 악, 하고 소리치자 내자 다른이들이 쳐다보았다.

밖으로 향한 목소리에, 밖으로 향한 눈과 귀가 반응하는 것: 그것이 시위의 전제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