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곡함

앞에서는 침묵을 유지해야 한다. 우선은 그것이 예의다.

누구도 간곡하게 표현할 수준이 되질 못했기 때문에, 그냥 립서비스를 하고 나왔다. 그 정도가 그 수준에 대한 예의다.

한 나이많은 여자가 분노했다. 그리고 그 분노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나이많은 여자는 매우 젊다.

잘 쉬기 위해 잘 쉬는 예를 하나하나 감각하도록 찝어주는, 매우 친절한 플랫폼 하나를 구상하고 있는데 타이틀이 생각나지 않는다. 번뜩 떠오르는 감정과 감성을 개인의 표현가능한 방식으로 표출할 수 있는 예들을 늘리기 위한 채널일 수도 있겠다. 그냥 그렇게, 결국은 실현될일이 없는 신박한 아이디어를 머릿속으로만 상상하고 키우는 일. 그런 상상에 신나하고. 그러면 내가 마치 뭐라고 된것같는 우쭐함에 세상의 불의를 용서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줄임말이나 이즘이나 신조어를 사용하고 싶지 않다. 삶을 관통하는 편안하고 평범한 말이어야 한다. 어휘의 결핍은 늘 나를 가장 불안하게 한다. 잘 쉬고 있고, 앞으로도 잘 쉬고 싶다.

경쟁심을 총알삼아, 1997년 이후, 경쟁이 한 사회를 발전시킨다. 한명의 승리자가 나머지를 먹여살렸다. 한명의 승리자가 나올 때까지 전부 죽어야만 하는 검투사 논리였다. 그리고 그 한명의 승리자도 언젠간 죽는다. 모두가 죽어야 끝나는 것이다.

경쟁의 개념이 나쁜 것은 아니다. 좋은 경쟁은 사랑과 관심이 전제일 것이다. 놀이처럼 하는 경쟁에는 즐거움과 애정이 있다.

부모나 스승, 크게는 사회에 의해 강요된 경쟁에, 왜 개인이 먹잇감이 되어야 하나. 경쟁이라는 정치광고에 속아, 자본이라는 종교에 속아, 왜 내가 성장과 성공을 동일시해야 하나.

우리는 성장을 해야 행복감과 인간적인 성취감을 느낀다. 성장은 각자 개인들의 삶의 과정에서 고민되는 의미들에서 온다. 누군가 쳐지고 아파하면, 같이 아파하며 거기서 같이 그만두면 된다. 그 스톱!의 연대와 행동, 거기서 우리는 성장이라는 것을 한다. 그러자 네가 이상적이라는 말을 했다. 이상이 없는 것이 문제지, 이상을 가지는 것은 자유롭고 건강한 것이다. 그리고 좋은 경쟁은 휴식과도 연결 될 것이다. 휴식의 목적이 일의 효능과 능률에 있어서 문제인 것. 좋은 경쟁이 있다면, 좋은 휴식은 휴식 자체로 성장을 할 테죠.

네가 그만두어라, 지속적으로 권유했지만 그만두지 못하는 것을 이토록 쉽게, 누구도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놓았다.

너는 나쁜 사람이었다. 내가 자기연민을 하도록, 그토록 오랫동안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현실의 한계는 연민의 대상이 아닌 동감의 대상이었다.

이것은 엄연히 다른것인데, 이해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동감은 연민과 위로보다 건강했다.

그리고 놓아야 할 것을 놓게 했고, 거기서 휴식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