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함

과 싸우고 있다. 기름기와 수분기가 하나 없는 퍽퍽함 속에서.

이 건조함은 때가 묻으면 지워지는 것이라고 안심했던 부분이다. 기대하던 때가 지난 것 같으나, 여전히 때가 묻질않아 답답하다.

차갑고 어두운 곳에서 오랫동안 쪼그리며 빛 하나 쬐지 못했다. 키도 무게도 가지지 못하고 먼지의 모양으로 뒹굴다가, 비가 오는 날엔 축축해진 무게로 바닥에 닿을 수 있었다,지만 그것은 찰나였고, 다시 무미건조함으로 돌아가 허공을 뒹굴거렸다. 형상을 가질 수 있는 때가 지났다.라고 느낀다. 지금 전에, 수분이나 유분이나, 아무튼 네가 와서 푹, 젹셔줘야 했다. 때,가 지났다 결국, 먼지로 남은 생을 소비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더욱 나이가 들어, 중년 쯤, 유들유들 스스로 기름져 지려나.

또는 기대했던 네 기름과 수분이 내게 나눠질 정도로 충분한 것은 아니던가.

건조함은 명료함에 대한 갈망으로 시작되어, 수없이 정의내려져 버린 고유함 앞에 완전히 수분기를 잃었다.

모든 생명 앞에 고개를 묻어버리는 것,이 지겨운 습관이 되어버려서, 코구멍에 사막이 느껴질 정도다. 지저분한 먼지들이 붙어있다. 숨을 쉴때마다 폐가 버석거린다.

삶의 명료함과 논리적 명료함은 같은 것,이라고 비트켄트슈타인이 말했었다.

네게 주어진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두개일리 없는 하나이다. 그 유일한 일이 개를 지키는 일이면, 그 개를 지키면 된다. 단순한 네 삶의 진리가, 나라를 구하고 세상을 구하고, 결국 너를 구할것이다.

이 문장의 건조함 때문에 울 수가 없었다. 이 문장의 불편함 때문에 네가 떠날까봐, 울 수 가 없다. 두려움조차 이토록 퍽퍽하게 굳어있다.

잊혀지지 않는 의미가 되려고 이름을 부른다.

단 하나의 이름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