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라도 보려고 가는 것이다. 연애라도 하려고 고백하는 것이다.

죽어버린 그 심장이 살아날까 싶어서.

강자는 감정을 표현하기 거리낌이 없고, 약자는 감정을 숨겨야 생존한다.

강자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복지와 예법이 아니다. 세상의 법도 윤리도 강자의 인권과 감정을 보호하려고 존재하고 있다. 약자의 감정이 들어날 수 있는 구조가 되지 못한 구조는 없는 것이 낫다.

정부도 기업도 사회도, 작게는 가족 간에도 약자의 감정을 위한 안전 보장은 없다. 여전히 ‘개인’은, 가진 자에게만 주어진 권력의 이름이다.

약자의 감정은 갈수록 죽어가고, 이미 죽은지도 모르고 죽어있고.

북한의 당원들의 무감정하고 절제된 박수소리에서 죽어버린 심장이.

억압적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멍한 눈이. 이미 죽어있는 동태같은 눈이.

시끄럽고 정신없고, 한사람 한사람 목소리를 내는 사회,가 민주주의에 가까운 것일텐데, 시끄러운 것은 나쁜 것이라고, 유치원 때 내가 좋아하던 사슴반 선생님이 말했었다.

극도로 조용한 사회는 죽은 것이다. 살아있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의 이성은 우선 감정을 존중해야 한다. 이성이 앞선 교육을 강요받았기 때문에, 감정적이라는 욕을 먹곤 했다.

감정적인 것은 욕이구나. 나쁜 것이구나.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알았다. 화를 제때 제대로 내지 못해, 근거리에 있는 약자에게 화를 풀고, 그 약자에게 화의 고통을 전승시키는 구조는,’ 감정적’이라는 말이 욕 같아져버린 ‘매우 이성적인’ 이 세상 때문이구나. 당연하게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 무섭게 억눌리다보니, 은밀한 곳에서 지저분하고 더러운 방식으로 감정이 세어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감정을 지키려는 사람,이라면 옆에 있는 그 사람이 너를 도와줄 것이다. 이것은 지적인 문제가 아니다.

지적인 문제와 관념의 문제는 다르다. 관념은 우리의 감정에 근거한 언어체계일 것이다.

네 감정을 묻는 사람이 옆에 있고, 네 감정을 조롱하지 않고 읽어내려는 사람이 옆에 머물도록, 그 사람을 약자로 만들지 않겠다는 네 태도에 모든것이 달려있다.

이것은 사실 육적인 문제고, 육적인 문제는 지적인 문제보다 앞선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참, 고통스럽구나. 살아있는 한, 계속 고통스러울 것이다.

행복이란, 잠시 고통의 가시는 순간이라고, 그것을 인정하고, 감수해야지.

대게의 감정은, 서럽고 아프고 우울하고 오열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리고 약한 감정의 신호에, 무뎌지지 않도록, 예민함을 유지하도록.

대상을 측은하게. 잘 갈린 칼로 생살을 찌르는 듯한 모든 순간을 측은하게. 이것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문제다.

나를 끝없이 바보로 만드는 강자의 세상에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더 이상 키스하고 싶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끝난 것이고,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 또한 지적인 문제가 아니다. 지적으로 해결하면 안되는, 매우 육적인 문제일 것이다.

나쁜 것은 자신의 존재를 지적인 이유로 부정하는 것이다. 좋은 것은 육적인 문제를 지적인 언어로 인정할 수 있을 때 오는 관념의 통합과 교화의 부분일테지.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좋은 것, 이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