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아팠다. 가루로 바스러졌다. 아픔보다는 고통이었다. 들어낼 수 없으니 안에서 터지는 고통.

건조하게 말라비틀어져, 뭉쳐지지도 못하고 공기중으로 흩날렸다.

몸에 나쁜 독한 냄새 속에서 투명해져가는 유리창을 보았다.

남들이 일어나는 평범한 아침이 온다. 억지로 밝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해서 그 무력함을 잊어보려 했다.

예술가들, 예술가들. 더이상 이 진부하고 피상적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할 것이 없다,지만 결국 그것 밖에 할말이 없어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기 때문에, 이 세제 냄새에 숨을 섞어가며, 여기에서 살겠다, 했다. 나도 동화되어, 자존감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에 대해 자조할 정도로 진지하게, 하지만 반시간 뒤에는 잊버버릴 정도로 산만하게 떠들어댔고, 실제로 잊었다.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현실에서, 하나하나 터져가는 고통주머니를 보며, 그래, 제발 포기해라.

열등감, 이라는 에너지가 무럭무럭 자라서, 나라는 고유성,을 만들어 냈나, 하고 긍정해버렸는데, 이렇게 이론적 발전(?)을 해버리고 나니 같잖다.

도저히 시원하게 웃을 수 없어서 왜 이러나, 하고 생각해 보았다. 왜 이러나? 말이 되버린 열등감은 더이상 열등감이 아니라 하찮다.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노예 근성.

밤새도록 떠들 수 있었던 것은, 그 경험이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침묵한 이유는, 그 대상에게 진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네가 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네가 시련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숨을 건 자유를 갈망한 적도, 갈망하는 것을 실패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이에 보편성을 얻기 위한 전제는, 너와 내가 다른 시간대와 장소에서 겪은 시련이다. 우리가 시련을 얼마나 공유할 수 있나,에 내 자유를 걸어도 되나.

나는 너도 사랑했고 너도 사랑했고 너도 사랑했고 너도 사랑했고 너도 사랑했고 너도 사랑하나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