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는 독립적이었고 단일적이었다. 아끼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늘 텅 비어 있었다. 그래서 안정적이었고, 그래서 불안했다.

누구나 이혼할 수 있다, 라는 전제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것을 상기시킨 것도 그녀였다. 사귄지 일주일도 안된 시점이었다. 그 차분함으로 기반된 당연한 불안에 신뢰가 갔다.

아내가 되어주어라, 해서, 아내가 되어주었고, 늘 남김없이 사랑받았다. 왜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가,에, 이것이 마지막인가,를 늘 의심할 정도였고, 어느 날 그것이 적중했다. 그 날, 네가 아내의 역할이 완전히 연소되어서, 간다, 했을 때, 잡을 수 없었다. 나는 준비하던 것이 있었다. 그래서 연소되지 못했다고, 말할 기회도 없이, 아내가 끝났다. 내가 너의 아내였는지, 네가 나의 아내였는지, 정신을 혼미하게 묵직하게 짓누르는 네 연소의 무게. 우리는 늘 의미심장 했기 때문에, 추상적인 안정감으로 충만했었고, 그 충만으로 긴급한 일들을 무시해버리곤 했다. 아내였던 네가 헤어지자,했을 때 헤어지지 말자,고 했어야 했지만, 나는 네게 긴급한 말을 배운적이 없어서, 그때, 정말 말도 안되게 웃어버렸다. 농담이 아니다 정말. 유미주의의 폐해.

사라지지 않는 것이 소중한 것,이라는 명언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린 너. 덕에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졌다.

그래서 너도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알겠다. 네가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사라지게 될 것, 이라는 것도 알겠다.

반대로 사라지지 않는 것,에 네가 남아있어서 매우 놀랍다. 소중한 것,이라는 명언이 사라지지 않는 너, 덕분에 기억났다.

아내에게.

30년쯤 후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아내의 내면을 읽으려고 하는 욕구,가 내게 충만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30년쯤 후에, 내가 아내를 사랑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할수 있어야 한다.

30년간의 고통이, 아내가 있었기 때문에 삶이 되었다, 라고 말할수 있어야 한다. 화려하게 포장할 필요가 없는 이 소박한 언어를 유지할 깊이.

내가 그때, 너를 품지 못하고 네 광기를 내 놀이로 맞붙었던 것은, 네 미숙함때문에 진정성을 못느낀 내 미숙함 때문이다. 덕분에 지금은 많은 것들이 독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