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고

무른 것들이, 허락없이 들어날 때가, 있다.

그렇게 들어난 눈동자의 젖은 살을 만지고도 모른척, 해주는 센스가 네게 없다는 것은, 행운이자 불행이다. 

만졌다, 라는 감각에 놀란게 아니라, 만지고 놀라하는 네 반응에 놀랐다. 눈동자가 젖어있는게 당연한데.

그리고선 바삐 도망쳤는데, 도망가놓고 잊어주세요, 미안해요, 라며 용서를 구하는 비겁함은 아마도 버릇. 

모든것이 급히 치뤄졌기 때문에, 경험은 무게를 가지지 못했고. 힘든일을 겪었다고 누구나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라서.

네가 너의 깊이감을 응시하는 일을 성급히 그만둔 것은 내 알바가 아니나, 나의 사유를 방해한 것은, 실망스럽다.

도망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도망치는 동시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자기교만이다. 방향성을 정하지 못하고 부정확한 촉수를 여기저기 뻗는 것 역시, 교만.

저변에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자만에서, 지독한 냄새가 났다. 

한글자한글자한마디한마디에서. 정화되지 못한 천박한 자기애가 뚝뚝.

처음있는 일은 아니지만, 아무튼 이런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내려다가, 그냥 다 귀찮아져서, 됐다, 즐겁게 살자, 라고 말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들려주고 싶지 않다. 재미없는 내가 재미있게 이야기를 꾸미는데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투자 되는지, 네가 눈치채는 것이 싫어서.

몰래나마 네가 충분히 착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이렇게 펼쳐놓고 줍지 않는다.

떨어진 조각들에 찔리는게 양심이라면 아직 가능성이 있는거고, 찔리는게 부심이라면 방법이 없겠다. 

일단 줍는건 내 역할은 아니고. 그 후에 내게 돌려 줄건지 말건지는 네가 결정해요. 네 정직이 정직하지 않다는 것 쯤은 알고있으니. 

나는 엉망인 사람, 이라고 호소하는 그 얼굴에서, 그릇 밑바닥에 난 구멍을 바라볼 용기가 없어 억지로 채워진 거짓물덩이가 보인다. 색이 없고 딱딱한 물이다.

그러니까 네가 주워. 나는 줍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