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의 기준을 자기 기준으로 삼아서 살아온 너에게, 무리인게 당연했다.

기준의 생산자가 되어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두려웠기 때문에 어쩔줄 몰라 분노했을 것이다. 

보편성이라는 객관적 권력에 편승된 기준이란게, 생각보다 편하고 생각보다 강력해서.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러니까 맞는거겠지, 그러니까 나도 괜찮은거 아니겠어요.

하지만 네 안위따위 관심없는 내가 너에게 할수 있는 말, 

그 보편적 기준이라는 것도 처음이 있었고, 기준이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늘, 잊어요.

내가 나의 주인으로써 완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보통의 에너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주 지치곤 했고, 지금도 지친다. 

그래도 늘 상기하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사건이지 이론이 아니라고.

이론은 사건에는 엇비슷하게 적용될 수는 있지만, 진리는 아니라고. 

죽은 자들의 죽은 말들을 진리인것 처럼. 참고는 되겠지만, 진리인 것 같은, 착각.

생전에 성인이었던 죽은 자들의 말에 의지하며, 그 죽은 말을 살리려고 발버둥치느라, 비록 유려하지는 못하나 살아있는 내 언어는 듣지 못하고. 

말을 했지만, 화는 내지 않았다. 화를 내서 이해할 정도라면 결국 아직 붙잡고있는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이구나. 아기같이. 

화를 푸는 것이 아니라 내는 사람에게서는 늘, 근원적인 실망을 하게 된다. 

내 기대치가 높은거라고, 또 다른 네가 말했다.

당신 혹시, 지식의 구조에 갇혀, 죽은 이념에 빠져서.

세상을 구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세상을 구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요?

혁신을 토론하고 그 이론과 이념에 참여하는 것으로, 내가 혁신을 이루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요?

사실은 이미 죽은 일에 자신의 목소리를 편승하느라, 무의미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내 용기의 그릇을 늘 확인한다. 

사건이 일어나는 곳은 늘 일상이다. 사건을 담당하고 책임질 용기. 그 용기에 근거는 대상에 대한 애정. 애정의 크기.

내가 일상을 얼마나 존중하고 실천하고 있는지. 그 실천이 나에 의한 것인지, 편리한 권력에 편승할 뿐인지. 

나의 그 모든 표현 방식은 얼마나 촌스럽고 또는 얼마나 세련되었는지.   

너는 왜 보편적 우리로 사는데는 목숨도 받치면서, 나로 사는데는 소홀한지. 

내가 여기로 오면서 했던 생각과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었던 본질적 질문,

내가 나만의 고유한 활동성, 욕망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가. 그것을 사건으로 발동시킬수 있는가.

그리고 다시 질문, 그래서 지금은 그 실천이 실천되고 있는가.

오직 나만이 가지고 있는 손끝의 예민한 감각으로부터 나오는 완성도에 집중하자고 선택했던 때. 

나의 사건과 감각을 내 스스로 완전히 신뢰한다는 전제로.

그리고,

나를 세상만큼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 세상을 맡기겠다고. 나라는 개인이 세상보다 하위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납득하고 있는 사람.

아쉬운 점은, 혁명의 이념을 수행만 했지, 혁명가가 혁명되지 않을 채 혁명을 하고 있는 어떤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 에너지가 아까워 틈새를 찾고 있는 나.

일상은 운동한다. 이 세상은 단 일초도 정지해있지 않다. 운동이란, 경계가 계속 중첩되어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이다.

삶 속의 모든 활동들은 모두 운동이다. 

운동이 일어나는 중첩의 경계에 서있는 감각.

내가 이 사건의 담당자가 되겠다, 했다. 하나의 가치를 수행하는 움직이는 개별자가 되겠다, 했다.

경계를 모두 품은 사람은 강하다. 왜냐하면, 유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를 내지 않겠다고, 그래서 아예 화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최면을 걸었고, 걸렸다.

한쪽의 이념에 편승한 사람은 약하다. 죽은 것은 뻣뻣 하고, 살아있는 것은 유연하다. 활동하고 운동하는 것은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경계를 포용해야 한다고. 내가 말을 듣는 이유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내가 말을 하는 대상은 내가 말을 들었던 대상이다.

내가 말을 들어줄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기쁨이다.

눈빛이 살아있는 사람을 보기가 참 어렵다. 네 동태같은 눈빛에서 일말의 반짝임을 보았기 때문에 이런 또 쓸데없는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