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나라

에서 엄마가, 새벽에 꿈을 꿨다고.  

무슨일이 있는거니. 악몽을 꿨어. 뭘하고 다니는 거니. 뭔지는 모르겠지만 급하게 가지말고 안정적으로 가야한다.

라는 염려에, 갑자기 모든것이 눈녹듯이 가라앉았다. 그녀의 낙관하는 성정이 이렇게 감동을 주기도 한다. 길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소리없는 함박눈이. 

시선이 땅바닥으로 몰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게 쌓이는 줄도, 겨울 인지도, 얼어가고 있는줄도 몰랐다. 

해를 등지고, 내가 만든 그림자 속에서, 서서, 바닥을 보며 울거나 웃거나, 했다. 

소리라도 났으면 좀더 빨리 눈치챘겠지만, 엄마가 봄이라고, 이 나이에 엄마가 말해서, 알았다.

평범하기로 작정했다, 다른사람들이 되어버린 너처럼. 그것은 정말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평범해져버린 너를, 끝내 상실로 남겨두게 되어, 다행이다.

상실,이 된 너는 결국 나의 평생의 금기로써, 영원한 타자로써, 대체불능한 대상이 되겠고.

너 또한 나를, 평생의 금지된 욕망으로, 가끔 몰래 들춰 볼 것이고.

그것을 내가 대중적인 언어로, 한개한개 끄집어 내어 사람들에게 팔아버릴 것이고.

그래, 사실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해못 할 것은 없지만, 이해할 수 없다,라는 말은 이해하고 싶지 않고, 공감할 수 없으며, 어느 정도 감정이 상했다는 말이다.

텅, 빈 상태가 아닌 것에 감사하기 보다는, 꼭 맞지 않아 헐렁한 조임을 불평하는 것은, 기대를 하는 동시에 감정이 살아있다는 말이다.

A를 금지하고, B를 허락하는 것은, A를 갈망하게 하고, B를 평범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네가 여기 없었다면, 나는 여기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나는 A와 B를 버리고 C에 있기로 선택했는데, C에 있게되면서 모든것이 전복 되었고, 그 파괴성이 어쩐히 흡족하다.

근데 정말, 완전히, 상당히 높은 확률로, 망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맘에 든다. 이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러운 나의 결정들,에서 내가 얼마나 자유로운지 가늠할 수 있다. 이 자유가 감정과 감성에서 나오는 비이성적인 행동이라는 것,에 아직 뭔가 생산할 수 있다, 고 긍정하게 되고, 그것은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고통이 문제가 아니라, 고통이 의미가 없어서 문제였다. 고통 그 자체로 악, 임이 틀림없는데, 그것을 교훈이나 벌 따위로 해석해버리는 낙관은 네가 게으른 겁쟁이라서. 고통의 효용성과 유용성을 가지고 계산을 하려니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고통의 대한 고통스런 감수성으로 그것이 오기 전에 예비를 하고자. 하지만 올 것은 오겠지 늘 그랬듯.


오후의 물체가 지금은 그냥 물질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림자도 명암도 질감도 없다. 밤이 되면 내가 글을 쓸수 없으니, 어두워지기 전에 네 기분이 좀 나아졌음 좋겠다.